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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이야기

유방암 조직검사를 받다.

by 현소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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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에 혹이 있는 걸 발견했다.

유방의 혹이 생긴 건 얼마 안 되었다.(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실 생각도 못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저 몇 달 전부터 너무 피곤하고 컨디션이 올라오질 않아서

건강검진을 빨리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추가금을 내서라도 갑상선과 유방암 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생리가 끝난 어느 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말랑말랑해져야 할 오른쪽 가슴이 이상하게 덜 말랑해지고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생리가 끝났는데 이건 말이 안되는데? 이리 잡아보고 저리 잡아보고 만져보고 하다가

몇 개의 혹을 촉진할 수 있었다.

 

"조직 검사를 하자고 할 거 같아"

 

혹을 만지자마자 남편에게 했던 말이었다. 별거 아닐 거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기에 내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검진 날만 기다려야 했다.

 


 

건강 검진을 했다.

나는 치밀 유방이어서 엑스레이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유방 초음파를 통해서 오른쪽 유방에 혹이 여러 개,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혹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음파를 하다 말고 담당 의사를 불러서 같이 볼 정도면 얼마나 심한 걸까. 

조직 검사를 해야겠다는 의사의 말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눈물이 나왔다.

 

의사는 소견서를 적어주었고 간호사는 초음파 사진이 담긴 CD를 주었다.

심란한 마음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재택근무 중 잠시 시간을 내서 나온 거였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조직검사를 할 수 있는 유방외과를 검색했다.

요즘은 유방외과라고 안 하고 유외과라고 한단다.

 

엄마가 지인들에게 물어봐서 추천받은 곳은 2주 넘게 기다려야 했기에

내가 인터넷을 통해 찾은 곳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했다.

 

 

 

유방암 조직 검사를 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여성의 날이었다.

3월 8일. 오늘은 여성의 날이랬다.

검사를 받을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야 여성의 날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이상했다.

여성의 날에 여성의 가장 상징적인 유방 조직검사를 받는다니, 누군가 내가 유방을 달고 나오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착잡한 기분을 안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병원 근처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반차를 내고 함께 와준 남편은 핸드폰을 통해 부동산 시세를 알아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어젯밤에 집주인이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달라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요즘 집 구하기 쉽지 않은데..'

 

이미 병원 예약으로 더 가라앉을 곳도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부동산 사장님과 문자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가 먼저 부동산 사장님과 연락을 해주어서

그래도 이사 날짜를 맞출 수 있는 집을 두 곳 정도 볼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병원에 왔다.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병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마 내가 마지막 시간대 예약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접수를 하고 이전 병원에서 받은 자료를 간호사들에게 넘겼다.

'섬유선종일 거야-'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이건 조직검사 하죠"

 

자료를 살펴보던 의사가 이 모양새는 조직검사를 해야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조직검사를 하러 왔는데 조직검사를 하자니, 그럼 뭐 안 하려고 했었나.

조직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듣고 침대에 누웠다.

국소마취를 하고 바늘을 찌른 후 바늘 관을 통해 조직을 떼어내는 기구를 넣어 떼어낸다고 했다.

많이 아프겠죠? 얼마나 아픈가요? 물어봐도 간호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아예 듣지 않는 것처럼, 자기네들 일을 얼른 끝내야겠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 나만 무섭구나. 나만 두렵지. 저들에겐 그냥 일이구나.

가슴을 휑하니 내놓고 누워있다 보니 내가 사람이 아니라 무슨 물건이 된 것 같았다.

조직을 떼어내기 전에 초음파 검사를 한 번 더 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두 군데에서 조식을 떼어 낼 거예요, 모양이 좋지는 않네"

 

혹은 세 개라고 알고 있는데 두 군데에서 떼어낸다고 하면 그 두 개에만 이상 소견이 있는 걸까?

모양이 좋지 않다는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마취할 때 많이 아플 거고 그 후에는 안 아플 거라고 의사가 설명해 줬다.

아무리 그래도 살을  뚫고 깊게 들어가는데 안 아프겠습니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첫 번째 마취를 하는데 마취액이 내 얼굴로 뿌려졌다.

약을 넣던 과정에서 뭐가 잘못된 것 같았다. 의사는 미안하다고 조금 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이 병원을 괜히 왔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바늘을 꽂고 의사는 조직을 떼어내는 기구에 대해 설명했다.

기다란 부분이 바늘의 관으로 들어가서 총처럼 탕! 하고 쏜다고 했다.

3번을 할 거고 국소마취를 했기 때문에 아프지 않을 거라고.

첫 번째 총을 쏘자마자 와우- 소리가 절로 났다.

오른쪽 가슴 전체가 울리는 것처럼 아팠다.

아파요?! 의사가 물어봤다. 네 아파요. 대답했다.

두 번째 것은 각도를 조금 다르게 해서 넣어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아팠다.

 

"왜 그러지? 마취가 덜 됐나."

 

의사가 당황하는 것 같았고 난 괜찮으니 그냥 버티겠다고 했다.

손톱으로 살을 꾸욱 눌렀다.

 

첫 번째 혹 조직 떼어내는 것이 끝났다.

두 번째 마취 주사가 들어갔다. 이번에도 아프다 그러면 내가 안 아프다고 말한 게 거짓말이 된다며 의사가 웃었다.

마취 주사를 놓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피부가 두껍다는 말도 했다.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걱정 한가득인 머리에 반박할 생각을 못했다.

다행히 두 번째는 덜 아팠다. 그래도 굵은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 있는데 아예 안아프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첫 번째보다는 훨씬 안 아팠다.

탕! 탕! 탕! 세 번의 굉음이 끝났다.

두꺼운 거즈로 지혈을 하고 가운을 입었다. 마취 때문인지 살짝 어지럽고 몸이 둔해졌다.

 

 

 

지옥의 시작

슬슬 걸어서 다시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조직을 채취했는지 알려줬다.

그리고 더 상세하게 찍은 혹 모양을 보여주었다. 첫 병원에서 촬영한 것보다 뚜렷하게 보이는 혹들은 모양새가 더 나빠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겨드랑이 임파선이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라고 대답했지만 내 기분을 살려주진 못했다.

조직 검사는 4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오는데, 공휴일과 주말이 껴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했다.

다음 날인 3월 9일은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만약에 암이면 병원을 옮겨야 하는데 어디 갈지 생각은 했어?"

 

내가 본인보다 어려서인가, 의사의 말이 짧았다 길었다 했다. 

암이면 병원을 어디로?

내가 암일 거라고 생각을 안 했었는데 병원까지 생각을 했을 리가.

생각한 곳이 없으니 추천해 달라고 말을 했고 의사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속옷을 하기 전 두꺼운 거즈가 덕지덕지 붙은 가슴이 보였다.

내 몸이 아니라 그냥 살덩어리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느슨하게 속옷을 입고 느릿하게 옷을 걸친 후 탈의실을 나왔다.

핸드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간호사가 챙기라고 말했던 주의사항이 적힌 프린트지를 들고 남편에게 갔다.

 

"생긴 게 좋지 않다네-"

 

눈물을 꾹 참고 이야기했다. 내가 마지막 예약이었는지 간호사들은 퇴근 준비에 한창이었다.

병원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여기저기 불이 꺼지고 있었다.

우선 나가자고 남편을 끌고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의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줬다.

"그래도 겨드랑이 임파선(림프선)이 깨끗하다니까 다행이다-"

남편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 네가 암이어서 치료하면 나도 머리 밀거야.

예쁜 가발 사서 같이 쓰고 다니자, 내가 사줄게!" 

 

"가발 쓰면 얼마나 더운데 왜 자기까지 머리를 밀어~"

 

남편의 눈엔 물이 가득했다. 그런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럴 일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동요시켰다.

저녁은 맛있는 걸 먹자. 좋아, 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둘이서 뒹굴뒹굴하면서 쉬자. 안돼, 우리 집 보러 가기로 했어. 아 맞네..

나 불안해, 걱정돼. 걱정하지 마, 별거 아닐 거야.

두려움을 온전히 느끼고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퇴근 인파로 가득한 지하철이,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상의 일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며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지옥 같은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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