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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이야기

복귀 6개월 차, 사직서를 썼다.

by 현소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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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월에 작성한 글로 어느 정도
시차가 있음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렇게 일찍 관둘 생각은 없었다.
몸이 가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려 했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것들을
새롭게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수많은 스트레스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은 지 2주 만에
다시 병원행이었다.
스트레스성 위염과 만성 몸살.
만성 몸살이라는 말이 너무 웃기지만,
2주 전 링거를 맞았을 때도 미열이 있다고
몸살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2주 뒤 또 병원을 갔을 때도 미열이 있다
몸살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몸살이야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있었으니 만성 몸살이라는 말 외에
대체할 단어가 없다.








두 번째로 병원을 다녀온 후
상사에게 불려 갔다.

몸이 얼마나 안 좋은 거예요?
이렇게나 아프면 나 일 못 줘요.


날카로운 말투였다.
내가 환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회사로 다시 부른 사람이었다.
나는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있어도
진료가 끝나면 무조건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했다.
쉬고 싶고 자고 싶고 쓰러지고 싶어도 참았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말은 너 그렇게 아프면
같이 일 못한다-였다.
이 말에 담긴 뜻이 뻔해서 너무 속상했다.


아프지 말던가.
회사를 관두던가.



몸이 아픈 게 내 탓이었던가.
내가 환자인 걸 이 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딱 두 번의 병원 방문, 그로 인한 두 번의
급한 오전 반차가 그동안 노력한 내 열정을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것이었나.
딱 두 번의 병원 방문이 직원에 대한 믿음을
해칠 그런 큰 사건인 것인가.

나는 왜 이 회사에 애정을 주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가.


그래서 관두겠다고 했다.
5개월간 일을 하면서 딱 두 번의
급작스러운 병원 방문이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면,
이렇게 사람을 부속품으로만 생각한다면
굳이 내 몸을 갈아가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곳을 계속 다닌다는 것은 돈만 들어올 뿐,
다른 어떤 것도 남지 않는 행위였다.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안 되겠다는 내 말에
상사는 알겠다고 말했더니 그럼 당장 관둘 거냐
언제까지 일할 거냐 빨리 말해달라며 재촉했다.
나는 한 달을 제안했다.
나도 업무를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인계를 할 수 있는 시간이면서
회사도 내 다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
내 퇴사 일은 8월 말이 되었다.

상사는 굳이 숨길 생각도 없이
“아, 짜증 나-‘라고 말했다.
”저도 짜증 나요-“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받아쳤다.
아차 싶었는지 상사가 수습의 말을 했다.
서로 이 상황이 짜증 날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애초에 골머리 앓는 일은 다. 나에게 넘겨놓고
새로운 일을 공부하라고 도전하려던
본인의 계획이 망가졌으니 짜증이 났겠지.
오만가지 말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그냥 웃었다.

대화가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상사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아파서 쉰다고 해요.
1,2년 지나고 몸 괜찮아지면
다시 일해야 할 텐데,
그때 뭐 하게요?
앞으로 일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남편이 뭐 말해줬어요??



여기서 왜 생뚱맞게 남편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나를 아무 계획 없이 퇴사를 말하는 사람처럼
몰아가는 모양새가 어이없었다.
굳이 내 미래를 이 사람에게
브리핑해야 하나 싶었지만
계속 계획이 있냐며 다그치는 질문에
일부 계획 내용을 (적당히) 공유했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졌는지 상사는
그럼 뭐… 정도의 단어로 말을 얼버무렸다.
생각보다 잘 정리되어 있는 미래 계획에
다른 대꾸, 정확히는 가스라이팅을 할 말이
없어진 듯했다.

그렇다. 이 회사의 최대 단점.
상사, 임원진들이 직원을
가스라이팅 한다는 것이다.

그놈의 나이, 여자, 평생 일해야 하는 인생을
가지고 어찌나 가스라이팅을 해왔는지..
아파서 관두겠다는 사람 앞에서
이번에도 역시 앞으로 계속 일해야 할 텐데
어쩔 거냐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얼마 전 회식이 있었다.
퇴사가 결정되기 전 잡힌 회식이었고
정말 가기 싫었지만 분위기상
빠질 수 없어 참석했다.

1차를 적당히 잘 즐기고 집으로 가려는데
한 직장 동료가 이야기 좀 하자며 불렀다.
사원부터 차근차근 올라서 임원진이 된 동료였다.
(중소에서 임원진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ㅋㅋ)

소식을 들었다면 너무 아쉽다고 했다.
회사가 좋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컷을 거다,
그래서 다시 아프게 된 거 같다며 아쉬워했다.

차마 회사 때문이라 말할 수 없어
암이 이런가 봐요, 제가 약한 거죠. 둘러댔다.

“저도 회사 다니면서 몸 많이 안 좋아졌어요.”

동료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오롯이 회사 탓을 할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아픈 것 같다고 대꾸했다.

아쉬워요.
그러게요.

웃었다. 이 회사에서 임원을 하는 사람에게서
회사가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
놀라웠고 고마웠다.

퇴사까지 3주 정도 남았다.
내 후임은 아직도 안 들어왔고 일은 계속 쌓여간다.
이러다 또 회사 측에서 말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말이 바뀌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에..)
적당히 욕 안 먹을 정도만 처리하고
얼른 손을 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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