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드디어 퇴원이다!!
그래도 카디건을 입을 정도인 늦봄 날씨에 입원을 했는데 퇴원을 해보니 어느새 여름이 코 앞에 다가와있었다.
열흘 정도 입원을 했는데 입원할 때와 퇴원할 때의 계절이 다르다 보니 병원 안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내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목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피주머니를 모두 제거하고 퇴원하는 것이었다.
이 엄청난(?) 목표를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면 오히려 피주머니에 더 많은 피 양이
나온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운동을 아예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면 피주머니보다 운동이 더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적당하게 운동을 하면서 피주머니를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 아쉽게도 두 개는 제거하고
하나는 그냥 몸에 단 상태로 퇴원을 해야 했다.
피주머니를 달고 퇴원하면 다음 진료 때까지 매일매일 동일한 시간에 피 양과 색깔을 체크해야 한다.
매일 아침 간호사분들이 체크하던 것을 집에서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게 내 몸에 달리고 내 몸에서 나온 걸 직접 체크한다는 게 처음엔 약간 기분이 이상했다.
어쨌든 이 피의 상태로 내 몸속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피를 담을 수 있는 컵과 주사기, 그리고 색과 양을 적을 수 있는 종이를 준다.
그러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피 주머니에서 피를 컵으로 옮기고 주사기에 담아서 몇 ml인지 적고 피 색은 어땠는지 적는다.
피 색이 어두우거나 탁하면 안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병원에서도 피 색은 깨끗하게 잘 나온 편이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다음 진료 날짜는 퇴원하고 딱 일주일 후였는데, 난 다행히 퇴원 후 첫 진료에서 남은 피주머니도 뺄 수 있었다.
물론 그 빼는 느낌이 좋지 않고 빼는 과정이 괴로웠지만 그래도 피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불편함이 빨리 사라졌다는 것이 기뻤다.
퇴원하는 날 아침, 마지막 드레싱 시간은 좀 더 정신이 없었다.
집에서 어떻게 드레싱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제품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건 보호자가 들어야 하는 말이긴 한데, 주 보호자로 들어온 엄마는 나와 다른 집에 살고 있고
심지어 피와 흉터를 잘 못 보기 때문에 내가 더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해야 했다.
사진 왼편의 정사각형 밴드는 피주머니를 뽑은 후 상처에 붙이는 밴드로 같이 준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갈아줘야 했다.
가운데 테이프는 봉합용 테이프로 이미 상처에 붙어있지만 혹시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여유분을 주었다.
물론 붙이고 2주가 지나면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여분을 많이 주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퇴원한 다음 1주일 후에 있었던 첫 진료에서 떼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 사용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이 봉합용 테이프의 경우 수술 흉터를 조금이라도 옅게, 적게 하기 위해 봉함을 할 때 살 안쪽만 꿰매고
바깥쪽은 이 봉합용 테이프를 사용한다. 이건 나중에 실을 제거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편하다.
살 안쪽을 꿰맨 실은 나중에 녹는다고 한다! 근데 나는 다 녹지 않은 실이 있어서 결국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오른쪽의 커다란 밴드는 등 상처에 붙이는 밴드였다. 나는 가슴과 등에 기다란 흉터가 있고 피주머니를 달았던 3개의 구멍(?)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큰 흉터인 등에다 붙이는 밴드였다.
등에도 봉합용 테이프가 붙어있는데 이 테이프를 붙이면 간단한 샤워가 가능하기 때문에 샤워할 때는 커다란 밴드를 빼고
샤워 후 다시 밴드를 붙이라며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이 외에도 항생제와 진통제를 가득 받아서 입원할 때보다 더 많은 짐을 들고 그렇게 퇴원했다.
닿기만 해도 아픈 등과 잘 안 움직이는 오른팔
일주일 동안 머리를 못 감았다. 퇴원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감은 것이다.
다행히 단골 미용실이 있어서 입원 전에 내 상황을 설명하고 퇴원하고 머리 감으러 올 거라고 미리 언질을 해놔서 편하게 방문할 수 있었다.
충분히 내 상황을 인지하고 계시는 미용실 선생님이었기에 머리를 감으러 갈 때마다 많은 배려를 받았다.
등 수술 부위 때문에 의자에 쉽게 누울 수 없었는데 그것도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옆에서 다 도와주셨다.
물론 매일 미용실을 방문할 수는 없었기에 남편과 엄마, 동생까지 가족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정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고 다 큰 성인인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을 빌려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씻을 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역시 쉽지는 않았는데, 오른팔은 거의 움직일 수 없고 등의 흉터도 커서 고통이 꽤 있기에
어딘가에 기대어 앉는다거나 눕는다거나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도 등에는 푹신한 쿠션을 두어야 했고 어딘가를 갈 때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정말 살짝 스쳐가도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침대에 눕는 것도 수월치 않았는데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 집 침대가 모션 배드라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지낼 때고 등에 쿠션 여러 개를 대고 모션배드를 움직여서 눕곤 했었는데, 집에서도 동일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어서 보다 편리했다.
그리고 등이랑 팔, 가슴, 겨드랑이(이 겨드랑이가 진짜 많이 아픔)가 아파서 일직선으로 누워서 자는 것이 쉽지 않아
늘 모션배드를 살짝 올려서 어슷하게 누워 잠들었다.
피주머니가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뒤척이지 않고 자는 게 중요했는데, 아파서인지 알아서 움직이지 않고 잘 잤다.
평소에 엄청 뒤척이면서 자는 편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주일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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