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방암 이야기

나는 운이 좋은 유방암 환자

by 현소 2023. 4. 5.
반응형

오른쪽 가슴 전부 절제, 항암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내 암세포는 2~3개로 여러 방향으로 퍼져 있었다.

사이즈도 꽤 큰 사이즈여서 유외과에서 자료를 받아서 대학 병원에 갔을 때,

수술하고 나서 항암을 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전절제 역시 나는 부분 절제를 하고 싶어서 교수에게 물어봤지만

암이 큰 편이고 12시, 9시 방향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에 부분 절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거기가다가 나는 가슴이 작아서 모든 암을 부분 절제로 하고 나면 가슴 80% 이상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전절제를 하고 재건술을 하는게 낫다고..

그리고 이런 상황이면 가슴을 열어봤을 때 안보이는 곳에도 퍼져있을 수 있어 예방 차원에서 다 잘라내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항암까지 해야 하다니, 원체 부정적인 내가 이걸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는데 수술도 항암도 별 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교수를 보니

더더욱 내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의사가 믿음직스럽게 행동해서 위로가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재검사와 수술 후 검사 결과

유외과에서 자료를 들고 가긴 하지만 대학병원에 가면 다시 새롭게 검사를 한다.

암은 어떻게든 빠르게 치료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재검사를 하면서 약 한 달의 시간을 또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검사로 끝인게 아니라 수술 후 들어낸 암세포를 다시 새롭게 검사한다.

결국 수술 후 나오는 결과가 제일 정확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수술 전에 받은 검사 결과보다 수술 후, 들어낸 암세포를 검사한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술 전에 받은 검사는 1기로 나왔는데 막상 수술 후 자세히 검사한 것은 2,3기일 수도 있고

수술 전에는 방사선만 해도 되겠다고 이야기 나왔지만 수술 후 검사 결과로는 항암을 해야한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의사가 유외과에서 검사 결과를 한걸 보자마자 바로 항암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수술 후에 더 심하면 심했지 나아질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그냥 항암 기간이 짧기를, 더 많이 전이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수술을 위한 수많은 재검사를 하고 나서 다시 담당 교수를 만났을 때 의사의 표정은 밝았다.

 

순한 암이네요, 항암 안 해도 되겠어요.

더 정확한 결과를 보려면 수술 후 검사 결과를 봐야 하지만 암세포의 증식 지표인 ki-67이 한자리 숫자로 나왔고

허투음성(HER2 괴발현)이기에 수술 후에도 항암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했다.

물론 다른 요소도 고려했을 것이다.

 

수술하면서 림프절에 전이가 있거나 유두에 전이가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편하게 말하는 담당 교수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

 

 

 

내가 감히 유방암 환자라고 말해도 될까...

수술도 끝났다. 수술 후 검사한 결과에 Ki-67(증식지표)가 두 자릿수로 올랐지만 위험 수위는 아니었다.

역시 허투음성이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림프절에도 유두에도 전이가 없었다.

 

수술은 5시간이나 걸리는 큰 수술이었지만 재활 열심히 하고 6년 동안 타목시펜을 먹으며 항호르몬 치료를 하면 되었다.

 

이렇다 보니 가끔은 내가 '감히' 유방암 환자라고 말하고 다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힘겹게 투병하고 있는데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파도 아프지 않다, 혼자 움직일 수 없으면서도 모든 일을 어떻게든 혼자 해내려고 애썼다.

이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안쓰러웠는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자기, 암이에요. 그리고 엄청 큰 수술 했잖아. 마음도 엄청 졸이고, 많이 울기도 했고...

지금도 수술 부위 아프고 팔도 안 올라가는데, 그런 생각하지 마요- 우리도 우리대로 열심히 이겨내고 있으니까.."

 

이 말에 나는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환자라고 하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나에겐 죄스럽게 느껴졌었는데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를 한 걸지도 모르겠다.

맞다. 암에는 다양한 케이스가 있고 나는 그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고생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나는 내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나도 여러 가지 고초를 겪었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 유방을 검색하면 크게 두 가지로 사례가 나뉜다.

부분 절제를 하고 향후 치료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 항암을 하시는 분들.

아무리 찾아봐도 나처럼 전절제를 하고 항암 없이 약만 복용하는 사례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좋은 환자이지만 그래도 이런 사례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례도 있으니까 앞으로 암 판정을 받으신 분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수술 한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들과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지만 아직도 수술 부위 일부는 뭉쳐있는 돌 같은 느낌이고 팔은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일정 하나를 소화하고 나면 갑작스레 피곤해져서 그다음 날은 온종일 누워있어야 한다.

하루에 일정이 여러 개가 있으면 중간에 쪽잠을 자야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난 항암을 하지 않고 수술만 하고 약만 먹는 사람이지만, 약의 부작용이 여러모로 밀려와서 그것을 이겨내며 지내고 있다.

나는 암 환자가 맞다.

너 운이 좋네?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일찍 내 가슴의 이상을 발견하고 검진을 받은 게 과연 운일까.

나는 건강 염려증이 매우 심한 사람인데 그 덕분에 암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운일 수 있다. 운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내 사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미리미리 검진을 받고 자신의 몸을 관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반응형